연옥

연옥 

 

1. 들어가는 말

 

우리가 죽은 뒤에 천국과 지옥의 두 곳만 있다면, 그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아주 티도 흠도 없는 깨끗한 영혼들만이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을 뵐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인간인 이상 도덕적으로 잘 살았다 하더라도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으며, 여러 가지 지은 죄들과 죄에 기울어지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없이 좋으신 하느님께서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인간들에게 왜 이토록 비참한 운명을 주셨을까?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큰 죄를 짓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에는 갈 수 없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없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번 인간사회의 법정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어떤 죄인이 법정에 끌려와서 재판을 받는다면, 무죄라면 바로 풀려나겠지만, 엄청난 죄를 지었다면 종신형을 받거나 사형을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죄인들은 자신이 죄를 지은 대가만큼 감옥에서 벌을 받는다. 이것을 유기징역이라고 한다.

 

죽은 이후의 세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유기징역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연옥인 것이다. 가톨릭은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 중에 죽었거나, 죄를 완전히 보속하지 못했을 때 이러한 영혼은 하느님께 나가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고 모든 것을 연옥에서 씻는다고 전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사실 연옥이 존재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우리가 비록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삶이기 때문에, 이런 우리도 연옥이 존재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게 되는 것이다. 

 

2. 연옥에 대한 성서적 근거 

 

) 구약성서적 근거

 

그렇다면 가톨릭의 성전말고 성서에는 연옥에 대한 근거가 없을까?

사실 연옥이라는 말과 교리가 성서에 분명히 나타나 있지는 않으며, 단지 이를 뒷받침하는 성서 구절만이 몇 군데 나타난다.

 

"그리고 유다는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금하여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가 이와 같이 숭고한 일을 한 것은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허사이고 무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3-46)

 

이 성서 구절은 연옥이 있음을 분명히 증명한다. 그런데 소위 종교개혁자들은 연옥에 대한 교리를 반대하기 위하여 마카베오서를 정경이 아니라고 제거해 버렸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마케베오서를 정당한 성경으로 옹호할 뿐 아니라 거기서 가르치는 연옥에 대한 교리까지도 변호한다.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가톨릭의 전통이다. 왜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가? 그것은 그가 비록 은총 중에 죽었다 할지라도 인간 내부에는 죄에로의 경향과 악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인 자기 중심주의에서 정화되어야 할 것이 많다.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일어난다. 이 정화는 시간 개념 밖에서 일어난다. 죽음 후에 더 이상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연옥은 불로써 상상되어졌지만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느 장소라기보다는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피조물인 우리가 조물주가 사랑으로 알려주신 방향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완전히 무시하고 살다가, 한 생명의 시한이 다 끝나버린 다음에서야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사랑의 원천이신 아름다운 그분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될 때 겪는 두려움과 고통이 연옥인 것이다. 

 

) 신약성서적 근거

 

그렇다면 신약성서에서는 연옥에 대한 말이 없을까?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2)

하느님이신 성령을 거스른 죄는 후세에서도 사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에는 후세에서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죄도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이 명백하다. 그곳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아무 죄도 없어야 들어갈 수 있고, 또 지옥은 영원한 벌이므로 조금도 사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 처소인 연옥이 있는 것이다.

 

성 바오로 사도도 다음과 같이 연옥의 존재를 가르치고 있다.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시험하여 그 진가를 가려줄 것입니다. 만일 그 기초 위에 세운 집이 그 불을 견디어 내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고 만일 그 집이 불에 타 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 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1고린 3,13-15)

 

불을 통하여 구원받을 것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연옥을 가리키는 말로써 해석될 수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이미 많은 교부들이 일치하여 주장한 바이다.

 

이와 같이 구약과 신약성서를 토대로 연옥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3. 연옥에 대한 가톨릭의 가르침

 

한편 인간 본성 안에는 이미 이러한 사실이 각인되어 있다. 하느님을 모르는 외교인들도 죽은 자들이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죽은 자들을 위해 명복을 빌어주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있을 때는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죽었다고 하여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 또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느님과의 해후는 죄인에게 있어서 우선적으로 두려운 심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하느님 체험은 죄 중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인간의 상황이 연장되어 연옥 신앙 속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처지를 볼 때, 죽음을 통한 하느님과의 만남은 하느님의 심판을 상기시키는데,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불태워 버리는 화염과 같다는 것을 우리는 예감할 수 있다.

이에 하느님 앞에서의 부족한 인간은 하느님을 올바로 뵈옵기 위해서 '정화'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 연옥에도 고통이 있을까?

 

연옥에도 지옥과 같은 실고(失苦)와 불타는 각고(覺苦)가 있다.

여기에서 실고(失苦)란 마태오 2541절의 말씀대로 하느님을 잃어버린 고통을 말한다. 대죄로 인해서 지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신 그리고 생명과 사랑이신 하느님과 영원히 격리된 상황에서 오는 고통인 것입니다.

각고(覺苦)는 말 그대로 감각적으로 느끼는 고통을 말한다.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하신 것처럼 뜨거운 불 속에서의 고통을 의미한다(마태 25,30). 이 고통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 아니고, 각자의 죄에 상응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고통의 기간이나 엄중함도, 지상의 신자의 기도와 선업 즉 신자의 전구에 의해서 단축 또는 경감된다. 이 고통 때문에 연옥 영혼들이 평안과 기쁨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옥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연옥은 영원한 곳이 아니고 잠정적이요, 희망적이란 곳이다.

 

) 연옥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이 세상에서의 경우 은총의 도움에 의해서 행하여진 애덕과 통회와 기도에 의하여 소죄가 정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옥에 있어서도 소죄가 정화된다.

하지만 죄에 대한 슬퍼함이 벌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착한 일을 하거나 공덕을 쌓는 상태 즉 어떤 행위를 통하여 보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정의에 의해서 내려진 벌의 고통을 견디는 것만으로 정화와 속죄가 되는 상태이다. 내세에서는 공덕을 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옥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고통을 즐겁게 수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유한적인 벌의 보상을 하면서 확실하게 정화된다.

앞서 말했듯이 그 고통의 기간이나 엄중함도, 지상의 신자의 기도와 선업 즉 신자의 전구에 의해서 단축 또는 경감되기 때문에 지상의 신자의 기도와 전구가 연옥의 영혼에게 필요하다.

 

) 연옥 영혼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는가?

 

가톨릭에서는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를 '위령기도'라고 한다. 연옥에 있는 이를 위해 드리는 기도를 지칭하는데 이는 성교예규(聖敎禮規)라는 기도서에 따라 하면 된다. 이 책에는 임종 때부터 장례 때의 기도까지 다 수록되어 있다.

일상적인 기도 가운데 연령을 위하여 기도하는 외에 112일을 모든 연령을 위한 축일로 정하고 특별히 기도한다. 평상시 죽은 이를 위해서는 신부님이 검은 제의를 입고 성당에 안치된 시체 앞에서 연령을 위한 미사를 한다.

교회는 초기부터 기도와 미사로써 연옥에 있는 영혼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가르치고 권고해 왔다.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되 연령을 구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한한 가치를 가진 위령미사를 바치는 것이다.

그러나 미사의 은혜가 무한하다고 하여 미사 한 번으로 연옥영혼이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미사의 은혜는 무한하지만 유한한 인간이 그 무한한 은혜를 다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영혼의 수용 능력대로만 은혜를 받기 때문에 미사 한 번으로만 족하다 생각 말고 여러 번 드려야 하고 또 기도도 많이 바쳐야 한다.

 

) 은총을 받는 영혼의 수용능력은 언제 결정되는가?

 

그것은 죽는 순간에 결정된다. 모든 것이 죽는 순간에 달렸다. 지옥에서의 영벌의 경중도 죽는 순간에 어떤 죄에서 죽는가에 달려 있고, 천국 영복의 경중도 죽는 순간 얼마나 큰 은총과 공로로 죽는가에 달려 있고, 연옥에서 은총을 받는데도 죽는 순간의 영혼상태로 결정된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 한 번 결정된 상태는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죽는 순간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죽음은 도둑처럼, 생각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공로를 세울 수 있는 기간은 이 세상살이하는 기간뿐이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내 영혼이 천국이냐, 지옥이냐, 연옥이냐 하는 열쇠를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다. 하느님도 이 권리에 대해서는 간섭할 수 없다.

그러니 삶을 정말 뜻있게 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일시적인 정화를 필요로 하는 상태 및 체류지인 '연옥'은 하느님의 성성(聖性), 정의, 예지, 자비를 명백히 보여주며, 인간을 절망과 윤리적인 경솔함으로부터 지켜주고, 더구나 죽은 사람도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증하여 줌으로써 많은 위로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주교 생활성가 인터넷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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